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강원 강릉에서 큰 산불이 났다. 불이 태풍급의 강한 바람을 타고 인근 산림과 주택가 등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주택·펜션 등 64채가 불에 탔다. 또 방해정(放海亭) 등 일부 문화재도 소실됐다. ‘대응 3단계’를 발령한 소방·산림 당국은 불이 민가나 문화재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주력했다. 소방대응 지휘에 나선 김진태 강원지사는 “강풍으로 인해 헬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고 민가의 소실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원 강릉시 난곡동 일대 야산에서 산불이 났다. 산림·소방당국은 고성능 산불진화차량 3대 등 진화장비 391대, 진화대원 2362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현장에는 평균풍속 초속 15m,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의 남서풍이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국은 산불 초기 초대형 헬기 6대를 출동시켰다가 바람이 거세지자 바로 철수시켰다. 당국은 헬기 14대를 대기시켜놨다가 오후 3시쯤 바람이 조금 약해지자 초대형 헬기 3대를 출동시켜 진화에 나섰다.
산림당국은 이번 산불의 영향구역이 370㏊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날 불은 태백산맥을 넘으며 고온건조해지는 바람 때문에 무섭게 확산했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초속 20m의 바람이 부는 경우 불티가 2㎞까지 날아가 다른 불을 냈다”면서 “순간 최대 풍속이 30m에 이르면서 불길이 급격히 번졌다”고 말했다. 강릉 시민 이모씨는 “경포호 일대와 강릉 앞바다가 검은 연기로 뒤덮이면서 상당수 주민이 공포에 떨었다”고 말했다.
이날 불로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방해정 일부가 소실됐으며, 경포호 주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상영정(觴詠亭)’은 불에 타 전소됐다. 국가민속문화재인 선교장 등 일부 문화재도 소실 위험에 놓이면서 당국이 문화재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데 힘을 쏟았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강릉 경포대의 현판 7개를 떼어내 인근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겼다.
당국은 이 산불의 영향구역이 약 103㏊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은 불이 난 산림에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많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날 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난곡동 등 산불지역 주민 303여명이 사천중학교 등으로 대피했다. 경포대초등학교 등 일부 학교의 학생들도 화재 발생지와 거리가 먼 다른 초등학교로 대피했다. 교육 당국은 강릉 일대 15개 학교에 대해 휴업을 하거나 단축수업을 하도록 했다. 또 불길이 강릉지역 호텔 인근으로 번지면서 투숙객 700여명이 대피했다.
강원도소방본부는 이날 오전 9시 19분 ‘대응 2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같은 날 오전 9시 43분쯤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강릉시는 시민들에게 경포동 주민센터, 아이스 아레나 등으로 대피하라는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했다.
산림당국은 이번 산불이 강풍으로 나무가 넘어지면서 전신주에 불이 붙으면서 산림으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국은 진화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날 강릉 지역을 포함한 영동 지역에는 건조 경보와 강풍 경보가 함께 내려졌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강릉지역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내렸지만 비의 양이 적어 진화에는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편 지난해 3월 4일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큰 산불은 9일만인 같은 달 13일에야 완전히 꺼졌다.
당시 이 산불로 산림 2만923㏊(울진 1만8463㏊, 삼척 2460㏊)의 산림이 불에 탔다. 또 주택 330곳, 농업 시설 203곳, 공공시설 57곳 등이 피해를 입었다. 당시 당국은 강풍과 건조한 날씨에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재난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한때 국가 주요시설인 한울원전·삼척 LNG 생산기지 등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