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김정숙 기자 | “저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었어요. 간호사인데 의사인 척 흰색 가운 입고 약 처방도 하고 심지어 수술까지 해요. (병원이) 인력을 싸게 쓰고 싶어서 그런 건데…. 당연히 불법이죠.”
6년간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간호사로 일한 임지우씨(가명·30)가 14일 말했다. 2019년 3년차 간호사였던 임씨는 1년간 임시 ‘PA(의사보조·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일했다. PA는 병원에서 처방, 진단, 수술 등 의사의 업무를 일부 대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임씨는 “본업이 아닌 일을 하다 보니 실수가 날 수밖에 없다. 동료 간호사 중에는 처치를 잘못해 수술을 다시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장이 ‘PA간호사 채용’으로 고발된 것을 계기로 PA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단체들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눈 감는 병원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12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박승우 병원장을 입건했다. 박 병원장은 지난해 12월 방사선종약학과에서 PA간호사를 채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통화에서 “진료지원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PA’라는 용어를 사용해 오해가 생긴 것”이라며 “간호사들에게 법이 제한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시킨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국내 PA간호사는 1만명 가량이다. 의사인력이 부족한 대형병원에서 PA간호사를 주로 채용한다. 특히 2015년 국회에서 전공의의 주당 최대 수련 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법’이 통과되면서 상급 종합병원의 인력난이 가중됐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전공의법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전문의를 더 채용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비용 절감’을 원하는 병원은 간호사를 PA로 쓰는 방법을 택한다”고 했다.
대리처방이나 대리수술 등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PA간호사들에게는 의료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사고 발생 시 간호사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서비스 질’도 크게 떨어진다. 임지우씨는 “PA 간호사가 업무범위 외의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해도 환자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 방법이 없다”면서 “환자와 보호자는 모르니까 항상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PA간호사 관행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의사들의 이중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PA간호사의 불법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사 인력을 확충하거나 PA간호사를 합법화해야 하는데, 의사단체는 둘 다 강력히 반대한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경찰 수사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는 그렇게 반대해놓고
인력이 부족해 PA를 쓰는 건 업무 범위를 침범한다고 생각해 싫어한다”고 꼬집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절대적인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특정 병원, 특정 과에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인력이 부족한 곳에도 갈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PA 제도화를 논하기 전) 간호사와 의사의 업무 범위를 확실히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