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이영식 기자 | "코로나19로 북한 국경이 봉쇄된 후로 물가가 열 배나 뛰어 살기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작년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 아래로 내려와 한국 땅을 밟은 북한이탈주민 강규리(24·가명)씨는 21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2024 통일문화행사 '청계천에서 통하나봄' 토크콘서트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 주민의 생활고가 극심해졌다면서 이같이 증언했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교육을 거쳐 사회로 나온 강씨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의 토크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북한이탈주민 입국 규모는 급감했다. 작년부터 규모 회복 추세지만 대부분은 국경 봉쇄 전 탈북해 3국에 체류하다가 입국한 경우여서 국경 봉쇄 후 북한 변화를 경험한 탈북민은 매우 드물다.
강씨의 경우 북한에서 직접 월경한 탈북민으로 코로나19 이후 북한 변화를 모두 체험했다.
국경 봉쇄로 중국산 소비재 공급이 끊기고,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통한 곡물 판매를 중단시켜 주민들은 살인적인 고물가를 겪었다고 한다.
강씨는 "돈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늘었고 '돈주'들도 많이 망했다. 국경이 막히기 전 중국 물품을 사들여 놨던 사람들이 그나마 이득을 봤다"고 말했다.
동시에 북한 당국은 남한 등 외부문화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등 사회 통제 고삐를 단단히 조였다고 강씨는 전했다.
드라마 등 남한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이 대화나 휴대전화 메시지에서 북한식 '다나까' 말투 대신 '해요체'를 즐겨 썼지만 북한 당국의 단속과 처벌이 심해진 2022년께부터는 남한식 말투를 그의 쓰지 못한다고 했다.
강씨는 "(외부 영상을) 보다가 걸리면 총살까지 당할 수도 있는데, 내가 아는 19세, 20세, 23세 애들도 그렇게 총살당했다"며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의 삶을 "비닐랩으로 얼굴을 칭칭 감아놓고는 바늘구멍만 몇 개 뚫어준 상태"에 비유하면서 "숨이 막혀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을 감행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해안지역에 거주한 강씨는 한국 TV방송을 수신할 수 있었다면서, 주민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남쪽에서의 삶을 꿈꿨다고 한다.
탈북길에 오를 때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강씨는 "자유를 향한 시도 그 자체로 너무나 행복했다. 바다로 떠나는 그 순간, 자유로워진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속초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을 발견한 어민이 '어디서 오셨냐, 탈북하신 것이냐'고 묻기에 북에서 왔다고 했더니 '잘 오셨다'고 해서 마음이 따뜻해졌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