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김영태 기자 |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국제사회의 대 러시아 제재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인도 정부는 국영 석유회사들에 러시아산 원유를 더 많이 구매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3~5월 유럽에 공급된 러시아산 원유는 하루 55만4000배럴 감소한 반면 아시아 판매량은 하루 50만3000배럴 증가했다. 유럽이 거부한 러시아산 원유를 아시아가 고스란히 받아낸 셈이다.
아시아 수출 증가분의 대부분은 중국과 인도로 흘러 들어갔다. 한국와 일본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였지만 중국과 인도가 구매한 물량에 비하면 감축량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의 지난 5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전달 대비 28%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국에 가장 많은 원유를 판매하는 최대 공급처가 됐다.
인도 역시 러시아산 원유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너지 정보제공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지난 2월말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25배 이상 늘었다. 6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100만배럴의 러시아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 이는 지난 2월 하루 평균 3만배럴 수준이던 것과 비교하면 33배 급증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 경고에도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끊지 못하는 것은 국제유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러시아산 우랄 원유는 북해산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최대 37달러 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 입장에선 자국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는 것은 물론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는 효과가 큰 러시아산 원유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심지어 인도 정부는 국영 석유회사들에 러시아 원유를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물량을 받아올 방안을 찾으라고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인도 국영 석유공사는 최근 러시아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와 추가 공급계약을 협상하고 있다.
케이플러의 빅토르 카토나 분석가는 "아시아가 러시아 원유 생산을 구했다"며 "서방국들이 제재에 나섰지만 러시아의 원유 생산이 줄기는커녕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오는 12월부터 러시아 원유를 운송하는 선박에 대한 보험을 금지할 예정이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러시아산 원유를 인도 항구로 실어나르는 유조선의 80%가 EU 소속인데, 인도 정부가 이들 선박에 대한 보험금을 지불해서라도 할인된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국제사회 제재망을 우회하는 인도 기업들의 수단도 진화하고 있다. 선박 운항 정보업체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엘란드라 데날리'라는 한 선박이 지난 3일 인도의 한 국영 석유회사 정유시설로 러시아산 원유를 실어 날랐는데, 이 선박은 단 한번도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았다. 문제의 이 선박은 지브롤터 인근 바다 위에서 흑해와 발트해의 러시아 항구에서 출발한 3척의 다른 유조선과 접촉, 해상에서 다양한 화물을 넘겨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