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정종원 기자 | 윤 대통령이 이날 정오쯤 참모들과 함께 방문한 '옛집 국수'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 뒷골목에서 40년 가까이 운영해온 오래된 노포이다.
연탄불에 우려낸 구수한 멸치 국물에 면을 말아낸 국수가 대표 메뉴인 이 식당은 따뜻하고 푸짐한 국수만큼이나 가슴 먹먹해지는 일화로 유명한 곳이다.
때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추운 겨울 새벽 6시쯤 남루한 옷차림을 한 40대 남성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당시 가게 주인 배혜자 할머니는 단번에 그가 노숙자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배 할머니는 푸짐하게 끓여 낸 국수 한 그릇을 그에게 내어줬고, 남자는 정신없이 배를 채웠다.
그릇이 비워져갈 무렵, 할머니는 그릇을 가져다 국수를 한가득 말아 또 내줬다 한다.
배는 든든히 채웠지만 국수 값을 낼 형편이 못되어 이리저리 배 할머니의 눈치만 보던 남자는 할머니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가게를 뛰쳐나갔다.
그때 가게 문 앞까지 따라나와 도망가는 그를 향해 외친 배 할머니의 말은 남자를 울리고 말았다.
"돈 없어도 뛰지 마! 다쳐. 그냥 걸어가. 배 고프면 다음에 또 와."
이 사연은 그로부터 10년 뒤, 한 방송국 PD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편지의 주인공은 그때 국수를 먹고 도망친 노숙자였다.
남자의 사연은 이랬다. 당시 그는 사기를 당해 재산을 모두 잃고 가족까지 떠난 참담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던 남자는 용산역 인근 식당마다 끼니를 구걸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독이 올랐고, 기름을 뿌려 불을 지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앙심을 품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배 할머니의 국숫집이었다.
국수를 배불리 먹고 도망친 그였지만 배 할머니의 "뛰지 마. 다쳐." 한마디에 다시 희망을 얻은 그는 이후 파라과이로 건너가 장사를 하며 번듯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방송에 나온 할머니의 식당을 보고 방송국으로 연락을 취한 그는 "주인 할머니는 세상을 원망하던 나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준 분"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배 할머니는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식당이 유명세를 얻자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 몇 그릇 말아준 것 가지고 과분한 마음을 받았다"며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배 할머니는 "어차피 돈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뛰길래 '넘어지면 다치니까 천천히 가라'고 소리쳤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