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김성묵 기자 | 지난 3년간 제주4·3 재심 전담 재판부를 맡아 4·3희생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장찬수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54·연수원 32기)는 “이념의 관점에서 제주4·3을 바라보는 시각을 극복하고 법대로만 판단하려 애썼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 부장판사는 7일 오전 제주지법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심 절차는 서로 다른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절차가 아니다”라며 “오로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는지 혹은 제주4·3사건특별법의 취지대로 판단하는 절차”라고 말했다.
그는 “4·3재심을 맡게 되면서 제주4·3진상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법정에서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면서 재판의 방향을 잡았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에 관한 기록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지 않아 재심 절차에서 문제되는 세부 쟁점에 관해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또 제주4·3사건을 이념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어, 이를 극복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법대로만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장 부장판사는 “2021년 3월 16일 하루에 20건의 사건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해 3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며 “사건의 규모뿐만 아니라 무죄를 선고해 법적으로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장 부장판사는 “4·3특별법 전부개정으로 희생자 명예회복에 큰 진전을 이뤘지만 희생자결정을 받지 못한 분들의 재심 관할 재판부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일반재판 수형인 직권재심에 대한 명시적인 입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고, 희생자나 유족이 직권재심 절차에 관한 정보를 열람하고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재심 보완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어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를 무제한으로 주는 이유에 대해 “4·3 재심은 역사적 기록물”이라며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후손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침묵의 세월을 버텨온 유족들의 한과 응어리를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 부장판사는 “민주화 이후 유족들과 제주도민의 노력으로 재심까지 이어졌지만 앞으로도 갈길이 먼만큼 연대의 정신을 잊지 않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며 “혼디모영 고치 가보게, 폭삭 속았수다(함께 모여서 같이 갑시다,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제주어로 말하며 제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장 부장판사는 2020년 2월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부임해 4·3 재심사건 대부분을 도맡아 1000명이 넘는 4·3피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4·3재심 전담 재판부 초대 재판장을 맡았던 그는 법관 인사발령에 따라 오는 20일 광주지방법원으로 자리를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