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이영식 기자 |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모여 살며 전통을 이어온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옛집이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과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을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7일 예고했다.
두 고택은 영주 무섬마을을 대표하는 가옥이다.
만죽재 고택은 병자호란 이후인 1666년 반남박씨 집안의 박수(1641∼1729)가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지은 집으로, 360여년간 집터와 가옥이 온전히 전해져 왔다.
고택은 안채, 사랑채, 부속채 등이 연결된 'ㅁ' 자형의 주택이다.
국가유산청은 "조선 중·후기 상류 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종법 질서의 표현 방법으로서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라며 "경북 북부지방에서 보편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죽재 고택에는 옛 생활과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남아있다.
전통혼례를 치를 때 신랑 집안에서 신부 집안에 보내는 혼인 문서인 혼서지(婚書紙)를 비롯해 호주가 호(戶·집)의 상황을 적어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등이 잘 보관돼 있다.
명성황후가 1895년 10월 일본군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 후 영남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 기록을 필사한 항일격문집, 만죽재에 전승돼 온 내방가사를 모은 문집 등도 있다.
'관직도표'를 그려놓고 주사위를 던져 숫자에 따라 말을 놓고 가장 먼저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인 승경도(陞卿圖) 관련 자료도 있어 당대 생활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그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에 고택을 수리한 이후 해체하거나 수리한 적이 없어 150년 가까이 원형이 잘 보존돼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낙풍은 고종(재위 1863∼1907)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친구로, 현재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친필로 알려져 있다.
해우당 고택 역시 'ㅁ' 자형으로 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안방에서 태어나서 목방, 작은사랑, 큰사랑 등으로 옮겨가는 생애주기와 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해우당 고택 역시 여러 고문헌과 서화, 글씨 등이 전한다.
김낙풍이 작성한 과거 답안지, 집 건물을 수호한다는 성주를 모셔두는 단지, 갓 보관함 등도 남아 있어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로 함께 지정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약 1달간 각계 의견을 들은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 등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확정한다.
해우당 고택은 선성김씨 집안에서 마을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김대(1732∼1809)의 손자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지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