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2019년 방북을 위해 북측에 친서와 공문 등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문서를 전달한 시점이 쌍방울그룹이 북측에 돈을 보낸 시점과 매번 일치해, 이 대표가 대북송금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이 제기된다.
중앙일보는 당시 경기도가 작성한 이 지사 명의의 친서 초본과 전달된 최종본, 그리고 그 이후 초청을 요청하는 공문을 모두 입수했다고 1일 보도했다.
해당 공문들은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도 확보해 작성 및 전달 경위를 조사 중인 문건이다.
친서가 전달된 2019년 5월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측에 '쪼개기 밀반출' 방식으로 500만 달러를 북측에 전달한 직후다. 공문이 작성된 2019년 11월은 300만 달러를 추가로 제공한 시점과 일치한다.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배임·회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 전 회장은 최근 검찰에 "300만 달러를 추가로 제공했으며 이는 이 지사의 방북비용 차원"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쌍방울 4월 대북송금 이어 5월 北 송명철에 이재명 친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명의의 친서 초안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김영철 위원장님 귀하'라고 시작한다.
2019년 5월 작성된 이 초안에는 "귀 위원회와 함께 지금 현재(2019년 5월)도 인도적 식량협력사업과 산림 녹화를 위한 묘목협력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1차 협력사업을 마무리하면 더 큰 규모로 협력사업이 바로 실행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친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이라는 귀한 걸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경기도지사인 저를 대표로 하는 경기도 대표단(경제고찰단)을 북측으로 초청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 드린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위원장님의 헌신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며, 귀 위원회의 건승을 기원한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같은 달 말 북측에 전달된 친서 최종본에는 '초청 요청'은 삭제되고 4·27판문점선언 1주년 공동 기념행사 공동 주최, 농촌복합시범마을사업, 정제콩기름공장 건설사업 등 추가 사업 추진 의사가 포함됐다.
당시 경기도와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중앙일보에 "친서는 경기도-쌍방울-북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구속 기소)이 중국 선양에서 송명철 조선아태평화위 부실장을 만나 건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영철에 재차 공문… 김성태 "300만 달러 송금은 이재명 방북용"
초청 요청은 6개월 뒤 정식 공문 형태로 북측에 다시 전달됐다. 경기도지사 직인이 찍힌 이 공문에는 "(이재명) 도지사를 대표로 하는 경기도 대표단의 초청을 정중히 요청 드린다"고 적혀 있다.
경기도는 이 공문에서도 "돼지고기 생산 증대로 나아가는 '양돈종합협력사업' 추진을 제안하고자 한다"며 "이에 더해 2018년 10월 귀 위원회와 협의한 현대적 시설의 농림복합형 시범농장(스마트팜)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제안한다"고 썼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2019년 1월과 4월 북측에 200만 달러와 300만 달러를 제공한 것이 경기도가 약속한 이 스마트팜 사업비를 대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29일 구속 기소된 안 회장의 공소장에는 안 회장이 쌍방울그룹 김 전 회장, 방용철 부회장 등과 2018년 12월 말 중국 단둥에서 김성혜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실장 등 북측 인사 2명을 만나 벌인 대북사업 협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성혜 실장은 이 자리에서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을 약속했는데 아직 아무런 지원이 없다. 쌍방울그룹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비용 50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회장이 진술한 300만 달러 추가 송금은 경기도가 초청 요청 공문을 전달한 2019년 11월에 이뤄졌다. 김 전 회장은 추가 송금의 목적을 "이 대표 방북 성사를 위한 비용"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19년 7월 경기도와 아태협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공동 개최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북한 대남공작기관인 국가보위성 소속 리호남을 만나 금액 등을 논의했다고 진술했다. 리호남은 안부수 회장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檢, 대북송금 배경 초점… 민주당 "2019년 하반기, 남북관계 경색"
김 전 회장의 진술로 검찰이 파악한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규모는 총 800만 달러로 늘어났다. 검찰은 김 전 회장과 쌍방울그룹이 '이재명 경기도'가 추진한 대북사업 관련 비용을 전적으로 대납한 경위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과의 협의 및 대북송금 과정을 이 대표가 당시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이 대표에게 적용할 혐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제3자 뇌물죄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김 전 회장은 검찰에서 "2019년 1월 중국에서 송명철 부실장을 직접 만났고, 이 자리에서 함께 있던 이화영 전 부지사를 통해 이 대표와 통화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송명철은 친서 전달 창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무리하게 대북사업을 추진한 배경도 검찰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당시 경기도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이 전 지사가 민주당 내 주류인 이해찬계 이화영 전 부지사를 영입할 때부터 '대북사업을 통해 본인을 차기 대선주자로 각인하려고 했다'는 인식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평화'는 민주당 대선주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코드"라며 "이 지점에서 당시 이 지사는 경쟁자였던 박원순 서울시장 등에 밀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판문점선언(2018년 4월) 이후 그 해 7월 경기도는 평화협력국을 신설하고 하반기 추경에서 남북교류협력기금 200억원을 편성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그 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포함된 3차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에서 이 지사는 제외됐다.
그러나 이후 후속 대북사업에서는 경기도가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먼저(2019년 11월) 통일부의 대북지원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선두주자로 나섰다.
이와 관련,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검찰의 허위·날조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며 "2019년 하반기는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미국 정부마저 북측과 대화를 진전할 수 없던 경색된 상황에서 경기도지사가 방북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